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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 없는 과학, 괴물을 설계하다(Engineering a Monster Without Ethics) 지킬 박사와 하이드 박사(Dr. Jekyll and Mr. Hyde)

줄거리 요약 (지킬 박사와 하이드 박사) 이야기는 19세기 런던을 배경으로, 존경받는 의사이자 과학자인 헨리 지킬 박사(Dr. Henry Jekyll)**가 인간 본성의 이중성에 대한 실험을 진행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는 인간에게는 선한 면과 악한 면이 공존한다고 믿으며, 이 둘을 분리할 수 있다면 인간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는 자신에게 직접 실험을 시행하고, 약물을 통해 **또 다른 자아인 하이드(Mr. Hyde)**로 변신하게 됩니다. 하이드는 지킬 박사의 억눌린 욕망과 폭력성을 자유롭게 드러내는 존재로, 극단적인 이기심과 잔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킬은 처음에는 하이드로 변신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점점 자제력을 잃고 하이드로 변해 있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며 , 자신의 악한 본성에 끌리기 시작합니다. 하이드는 점점 더 위험한 행동을 하며 범죄를 저지르고, 결국 살인까지 범하게 됩니다. 지킬은 자신의 실험이 끔찍한 결과를 불러왔다는 것을 깨닫고 중단하려 하지만, 하이드는 이미 그의 안에 깊이 뿌리내린 상태입니다. 지킬은 더 이상 약이 없어도 하이드로 변하게 되고, 끝내 자아의 통제를 잃고 비극적인 종말 을 맞이합니다. 윤리 없는 과학, 괴물을 설계하다 지킬 박사는 선과 악을 분리하려 하지만, 결국 자신이 만든 하이드에게 지배당하고 파멸합니다. 이걸 보며 저는 기술이 사람을 도울 수도 있지만, 책임이 없으면 오히려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을 써보았습니다.  과학은 언제부터인가 인간의 도덕보다 앞서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지킬 박사는 선과 악이라는 인간의 내면적 이중성을 과학으로 분리하려 했습니다. 그는 기술을 통해 인간의 도덕적 결함을 ‘제거’할 수 있다고 믿었고, 자신이 창조한 하이드라는 존재를 통해 그 가능성을 실험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도덕을 통제 가능한 실체로 착각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하이드는 단지 욕망의 폭주가 아니라, 윤리 없이 작동하는 기술의 또 다른 얼굴이었...

기술은 진보했지만 인간은 퇴보했다(Technology Advanced, But Humanity Regressed). (Movie: The Time Machine) (1960)

   기술은 진보했지만 인간은 퇴보했다   저는 영화 타임머신(1960)을 보고,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미래의 인간들은 편리함에 익숙해진 나머지 사고를 멈추고 타락한 모습으로 퇴화해 있었습니다. 저는 로봇공학을 전공하려는 입장에서, 이 장면들이 단지 공상이 아니라 오늘날 기술 의존 사회의 경고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기술이 인간을 진정으로 구원하려면, 방향성과 책임이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얻었습니다. 기술은 과연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 저는 영화 《타임머신》(1960)을 보고, 이 질문이 단순한 공상과학적 상상이 아니라 제 전공이 될 로봇공학의 본질을 되묻는 물음으로 다가왔습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시간을 초월하는 기계를 만들어 먼 미래로 갑니다. 그 미래는 처음에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상 몰락한 문명이었습니다. 기술은 눈에 띄지 않고, 인간은 지혜도 의지도 없는 존재로 퇴화해 있습니다. 겉으로는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사회는 지하의 몰록에게 지배당하며 사실상 노예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들이 로봇공학의 미래와 겹쳐졌습니다. 우리가 지금 만드는 기술이 정말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인간의 본질적 퇴화를 감추는 환상 인지 의문이듭니다. 저는 로봇공학이라는 전공이 단지 자동화를 위한 기술 개발이 아니라, 인간성과 사회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기술이 극단까지 발전해도 인간이 기술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그것을 통해 더 나은 가치를 추구하지 않으면 결국 인간성 자체가 붕괴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엘로이는 인간이지만 인간적이지 않았고, 그들은 기술이 만들어준 안락함 속에서 사고를 멈췄습니다. 몰록은 기술을 지배의 수단으로 전락시켰고, 서로는 서로를 도구처럼 이용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저는 로봇공학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은 방향 없이 진보하지 않으며, 그것을 어떻게 설계하고 운용하느...

그들은 괴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 (" The Worst Monsters Don’t Know They’re Monsters: The story of Franken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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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자비한 탐구와 복수의 그림자: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 소설은 캐퍼터러스에서 시작합니다. 캐퍼터러스 선장은 북극 탐험을 하던 중 몬스터를 만나게 되고, 그 몬스터가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창조물임을 알려줍니다. 이후 이야기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과거로 회귀한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젊은 과학자로서 목숨을 걸고 죽은 사람의 시체를 이용하여 인간을 창조하는 실험을 수행한다. 그러나 그 실험의 결과로 창조한 몬스터는 비틀거리고 흉측한 외모를 가지며, 빅터의 무지와 자신의 본성에 대한 탐구로부터 나오는 고통과 외로움을 겪게 된다. 몬스터는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고 복수심을 품게 되어 빅터의 가족과 친구들을 공격합니다. 빅터와 몬스터 사이의 격렬한 추격전과 혈투가 벌어지며 이야기는 공포와 감정적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몬스터는 자신의 존재를 빅터에게 끝내주라고 요구하고, 빅터는 몬스터를 찾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의 목숨을 빼앗고, 이야기는 비극적으로 끝나게 됩니다.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의 과학적 진보와 동시에 그로 인해 초래되는 도덕적 및 윤리적 문제를 탐구하는 중요한 소설 인거 같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고 죽음을 능가하려는 욕망으로 인해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인간의 욕망과 자만심의 상징적 인물로 그려집니다. 몬스터는 그의 이상적인 기대와 사회로부터의 배척으로 비참한 존재로 전락하며, 독자들에게 연민과 공포를 불러일으킵니다. 이 소설은 과학적 실험과 윤리적 고민 간의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적 발견을 어떻게 다루고 실패로 이어졌을 때 어떤 책임을 져야 했을까요? 오늘날 한국의 정치인, 판사, 권력자들에게서 괴물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겉으로는 정의롭고 공정한 척하고, 제도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합니다. 괴물은 자신의 괴물성을 아파하지만, 진짜 위험한 자들은 자신이 괴물이라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오히려 정의라 믿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써보았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