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악녀인 폐비윤씨, 어우동, 장희빈 왜 이들은 "희대의 악녀"란 타이틀을 왜 가지고 있을까요? 폐비윤씨의 왕비인 순종이 폐비윤씨를 두고 다른 여자를 만나다가 폐비윤씨 에게 걸리고 맙니다. 화난 폐비윤씨는 순종 얼굴에 상처를 냅니다. 그러한 이유로 지금 까지 희대의 악녀란 소리를 듣고있죠. 만약 여러분들이 폐비윤씨 라면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실건가요? 그거야 사람 마다 다르지만 지금 이 시대에서 생각한다면 그렇게 큰 잘못은 아닙니다. 요즘 새상엔 아주 흔한 일이죠. 하지만 아주 먼 옛날 시대라면 다릅니다. 이 뜻은 희대의 악녀인 폐비윤씨는 옛날 그 시대가 만든 악녀 라고 생각합니다. 과연 역사 기록자가 폐비윤씨 입장을 생각하고 적었다면 아직도 희대의 악녀란 소리를 듣고 있을까요?
'역사는 특정한 문명이나 민족들의 옛 활동에 관한 기록과 것들을 이해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과연 이 수 많은 역사가 정말 모든게 진실일까? 저는 역사 공부를 하면, 이게 정말 사실일까? 라는 의문점을 늘 가지고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있으니깐 그렇게 배우니깐 저도 그렇게 믿고 있죠. 아직 까지도 역사는 재해석 되고있습니다.
Why do they have the title of "Rare Evil Women" by Lung Bi-yoon, Eo-dong, and Jang Hee-bin? Sunjong, the queen of Lung Bi-yoon, meets another woman over Lung Bi-yoon and gets caught by Lung Bi-yoon. Angry Lung Bi-yoon hurts Sunjong's face. That's why I'm called the greatest evil woman ever. If you were Lung Bi Yoon, would you be watching me? It depends on the person, but if you think about it in this day and age, it's not a big mistake. It's very common in birds these days. But it's different if it's from a long time ago. This means that I think that the rare evil woman, Mr. Lung Bi-yoon, is a bad woman created by that era. If the historical recorder wrote it thinking about Lung Bi-yoon's position, would he still be called a rare evil woman?
History refers to the process of understanding records and understanding of the old activities of a particular civilization or people.' Is all this history really true? If I study history, is this really true? I've always had this question. But that's what a lot of people believe, and that's how they learn it, so that's what I believe. History is still being reinterpreted
1984 이 영화의 배경은 오세니아라는 이름의 통제된 사회입니다. 이 곳에서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는 파티의 일원으로서 생활하지만, 속은 억압과 의문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파티의 통제에 반항하는 욕망을 품고 있지만, 이를 표현할 수 없는 고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윈스턴은 우연히 반항적인 여성 줄리아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함께 파티의 통제를 벗어나기 위한 모험을 떠나지만, 파티는 모든 것을 감시하고 제어하기 때문에 그들의 도전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 영화는 윈스턴과 줄리아의 저항과 파티의 통제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투를 그립니다. 그러나 파티는 절대적인 힘으로 그들을 짓밟고, 결국 그들의 저항은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1984"는 현실주의적 분위기와 함께, 인간 정신의 힘과 파티의 통제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자유와 저항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파티의 엄격한 통제 아래에서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억압되고 변형되는지를 명확하게 보게 되었습니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파티의 강력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욕망과 자유를 위해 싸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파티의 압박만을 그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파티의 통제는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도 마주할 수 있는 권력의 남용과 통제에 대한 경고를 보여주는 것 습니다. 이는 저에게 개인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영화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욕망과 저항은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해있더라도 우리의 내면에서 깊이 숨겨진 욕망과 희망이 있다는 것을 상기 시켜 줍니다. 이것은 저에게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력한 마인드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우리에게 힘과 용기의 중요성을 교훈적으로 보여줍니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자신들의 가치관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이는 내가 어떤 난관에 직면하더라도 우리의...
가난이라는 시스템, 결함 있는 설계 저는 영화 《목로주점》을 보면서, 이것이 단순히 술과 가난의 이야기가 아니라 ‘결함 있는 시스템 설계도’처럼 보였습니다. 제르베즈와 쿠포는 개인의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오류가 내장된 사회라는 시스템 안에서 살아갔습니다. 마치 잘못 설계된 기계가 아무리 새 부품을 넣어도 계속 고장 나듯, 그들의 삶은 애초에 불평등과 가난이라는 코드에 의해 고장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학에서 시스템은 항상 입력(input)과 출력(output)으로 설명됩니다. 입력이 불공정하다면, 아무리 기계가 잘 작동해도 출력은 왜곡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르베즈가 아무리 노력해 세탁소를 열어도, 남편의 알코올 중독과 사회적 편견이라는 입력값은 결국 그 출력을 파괴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한국 사회의 빈곤 세습 구조와 겹쳐 보였습니다. 부모 세대의 가난이 자녀 세대의 출발점이 되고, 결국 같은 오류를 반복하는 구조는 마치 버그가 고쳐지지 않은 프로그램처럼 작동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엔지니어라면, 이 시스템을 보완하기 위해 ‘피드백 루프(Feedback Loop)’를 설계할 것입니다. 가난이 심화되기 전에 자동으로 지원이 가고, 알코올 중독 같은 사회적 병리가 감지되면 치료와 교육 프로그램이 강제적으로 개입하는 구조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있을 수 있습니다. 지나친 개입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제도의 오작동은 오히려 새로운 불평등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환경에 지배받습니다. 졸라가 말했듯, 인간은 본성보다 조건에 의해 규정됩니다. 공학적으로 말하면, 하드웨어(인간성)는 같아도 소프트웨어(환경)가 다르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학이 사회와 만날 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시스템은 사람을 살리는가, 아니면 사람을 무너뜨리는가? 저는 앞으로 공학을 공부하면서, 단순히 효율적이고 빠른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존엄을 보호하는 안전장치까지 ...
유산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아니면 족쇄가 되는가 사람들은 흔히 ‘유산(legacy)’을 축복처럼 여깁니다. 부모가 남긴 재산, 사회가 물려주는 제도, 전통이라는 이름의 기억들. 그러나 《위대한 유산》은 이 모든 것을 정반대로 비춘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핍이 신사로 만들어진 것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에 가까웠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갑작스러운 ‘위대한 유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사회 전체를 봤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학벌"이나 "가문"은 일종의 유산처럼 기능합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남들보다 높은 계단을 밟고 있고, 어떤 이는 출발선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유산’을 받은 사람조차도 행복하지 않다는 겁니다. 핍이 결국 깨닫듯, 유산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동시에, 우리를 자유롭게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이기도 합니다. 저의 의문점은 혹시 ‘유산’이라는 단어 자체가 인간의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부모의 재산, 사회의 제도, 심지어는 종교와 도덕까지도 사실은 물려받은 환상 아닐까? 우리는 그것을 진리처럼 믿지만, 실은 그 안에서 스스로를 가두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핍이 후원자가 하비샴 부인이라고 착각한 것처럼. 진실은 늘 예상 밖의 장소에서 드러납니다. 저는 한국의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떠올렸습니다. 그 건물은 부와 성공의 상징이자, 후대에 물려줄 ‘도시의 유산’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죽음의 유산’으로 남았습니다. 사회가 자랑스럽게 쌓아올린 것이 얼마나 쉽게 환상으로 무너지는지, 우리 모두 그 사건에서 확인했습니다. 위대한 유산을 보고 난 뒤 저는 더 이상 "유산은 축복이다"라는 말을 쉽게 믿을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은 과연 자유로 가는 사다리일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감옥의 철창일까? Is Legacy a Path to Free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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